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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는 자기나 기와, 그릇들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백련리 사기마을과 마을 뒷산에 4개의 가마터가 있는데, 이중 1개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며, 나머지 3개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굽던 조선시대의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이곳의 가마를 파괴하고 도공들을 납치해 갔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그릇의 종류는 대접, 접시, 사발, 병, 항아리, 장군, 잔 등 다양하며, 주로 생활용 그릇들을 굽던 곳으로 보인다. 도자기를 만드는 바탕흙인 태토는 회색인데 모래 같은 불순물들이 많이 섞여 있으며, 거칠고 어두운 회청색을 띤 유약을 두껍게 칠하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일본에서 찻잔으로 유명한 정호다완(井戶茶碗)의 특징과 비슷한 도자기 조각이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백련리 가마터는 16세기말이나 17세기초의 것으로 추정되며, 창원 두둥리 가마터와 함께 임진왜란 때 우리 도공들을 납치하여 생산한 정호다완의 기원을 밝히는데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