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장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박경리 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진 최참판댁이 자리잡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보며 지리산 치마폭에 고즈넉히 담겨 있는 작은 마을 악양(岳陽) 평사리. 중국의 악양과 형세가 흡사하여 악양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하동 평사리는 서희와 길상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입에 더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다.
논길을 따라 평사리로 들어가면 최참판댁의 첫 관문인 듯 우뚝 서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정겹게 맞이한다. 비포장 언덕길을 뒤덮어버린 회색의 아스팔트 길을 오르다 보면 평사리 언덕에는 초가들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 언덕 중턱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자리하고 있으니 그곳이 바로 최참판댁이다. 최참판댁은 소설 속의 가상공간을 평사리라는 지리적, 공간적 위치로 옮겨놓은 곳이다.
최참판댁의 방문객치고 대문을 그냥 들어서는 사람이 없다.
삼삼오오 모여 대문 앞에 설라치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리오너라’하고 목청을 높이니 마당을 쓸고 있던 머슴이 금방 달려와 문을 열어줄 듯하다. 외양간, 사랑방, 부엌, 우물, 정자, 안채, 뒤뜰 등... 잘 정리된 가옥들은 우리 한옥의 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사랑채의 대청마루에 올라앉으면 평사리의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면서 소설 《토지》의 장엄함이 느껴진다.
-차 시배지-
1987년 8월 6일 경상남도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었으며 쌍계사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가락국 수로왕비 허황옥이 차의 종자를 가져왔다고 전해지며 《삼국사기》에 따르면 828년(흥덕왕 3) 김대렴(金大廉)이 당나라에서 차의 종자를 가져와 왕의 명으로 지리산 일대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그뒤 830년부터 진감선사(眞鑑禪師)가 차를 번식시켜 차의 보급이 본격화하였다.
화개면 일대에는 절터 입구에서 쌍계사, 쌍계사에서 신흥까지 12㎞의 산과 들에 야생의 차밭이 있고 인공의 차밭도 29ha나 조성되어 있으며 연간 2.5톤의 차가 생산된다. 차는 곡우절부터 차잎을 따서 만들기 시작하여 이후 한달간 계속 수확되는데, 차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서 품질이 정해진다. 이곳의 차는 대의 이슬을 먹고 자란 잎으로 만들어서 피로를 풀어주고 머리를 맑게 하며 성인병 예방에도 효능이 뛰어나다.
-화개장터-
화개장터는 화개면 탑리에 있으며 5일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다.
지리산 맑은 물이 흘러내려와서 섬진강과 만나는 곳에 자리한 화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이어주는 화개장터는 해방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중 하나로 전국의 어느 시장보다 많은 사람이 붐볐던 곳이다.이곳엔 5일장이 섰으며, 지리산 화전민들은 고사리, 더덕, 감자 등을 가지고 와서 팔고, 전라도 구례,경남 함양 등 내륙지방 사람들은 쌀보리를 가져와 팔았다.
그리고 전국을 떠돌던 보부상들도 이 장을 놓칠세라 생활용품을 가지고 왔으며, 또한 여수, 광양, 남해, 삼천포 충무, 거제 등지의 사람들은 뱃길을 이용하여 미역, 청각, 고등어 등 수산물을 가득 싣고와 이 화개장터에서 팔았다.
김동리 소설 [역마]의 무대이기도 한 화개장터는 벚꽃길 따라 수많은 관광객이 지리산 쌍계사와 더불어 왕래하고 있으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도로변은 봄날이면 환상적인 벚꽃터널을 이룬다.
옛날 시골장터의 정취를 물씬 느낄수 있는 화개장터에는 국밥집, 도토리묵, 개첩국집, 주막, 엿장수, 산나물,녹차 등의 특산품 등이 있어 훈훈한 인심을 주고받는 만남과 화합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삼성궁-
삼성궁은 배달 민족 성전으로 한배임, 한배웅, 한배검 및 역대 나라를 세운 태조, 각 성씨의 시조, 현인과 무장을 모신 신성한 성역이다.
뿌리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고, 근원 없는 강물이 있을 수 없듯이 인류의 역사가 있음에 그 겨레의 조상이 있는 것은 하늘이 정한 아름다운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조상들은 수두라는 성역을 세워 하늘에 제 지내고, 배달 민족 고유의 정통 경전인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의 삼화경과 삼륜(三倫), 오계(五戒), 팔조(八條), 구서(八誓)의 덕목을 가르쳤다.
또한 수두에는 경당을 설치해 국자랑(國子郞)들에게 충.효.신.용.인(忠.孝.信.勇.仁) 등 오상(五常)의 도를 가르치고 독서(讀書), 습사(習射), 치마(馳馬), 예절(禮節), 歌樂(가악), 권박(拳博) 등 육예(六藝)를 연마시켰다.
옛 수두를 복원한 지금의 삼성궁은 배달 민족 정통 도맥인 선도의 맥을 지키며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 고유의 도량으로써 오늘날 잃어 버린 우리의 위대한 얼과 뿌리를 천지화랑(天指花郞)의 정신을 바탕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실현한 민족 대화합의 장이다.
삼성궁은 민족선도교육의 총본산입니다. 50년의 세월이 흘러 외적으로는 완벽해진 배달민족의 성전이 내적으로는 우리민족의 고유의 도맥의 복원을 해낸 것입니다.
5천년을 넘게 이어온 선교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곳. 선교는 고운 최치원에 의해 잘 알려 있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것을 일컬어 풍류라고 한다. 이교(선교)를 창설한 연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하게 갖추어져 있다. 실로 이에 유불도 삼교를 그 안에 머금고 있어 생명체를 접하며 바람직스럽게 변화시킨다.”
-쌍계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의 본사로 43개의 말사(末寺)를 관장하며 4개의 부속 암자가 있다. 723년(성덕왕 22)에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당에서 귀국하여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신 뒤 옥천사(玉泉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840년(문성왕 2) 진감선사(眞鑑禪師)가 당에서 차(茶) 씨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중창하면서 대가람이 되었다. 886년(정강왕 1) 쌍계사로 절 이름을 바꾸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2년(인조 10)에 벽암(碧巖)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칠불사-
쌍계사 북쪽 20리 되는 곳인 지리산 토끼봉(1533m) 아래 800m 고지에 있는 절이다. 연담 유일(1720-1799)이 쓴 칠불암 상량문에 의하면 신라 신문왕 때 지리산 옥부선인이 부는 옥피리 소리를 들은 일곱 왕자가 입산하여 6년만에 도를 깨닫고 이 절을 창건했다 고 한다. 그러나 전설에 따르면 선사 옥보를 따라 출가한 가락국 수로왕의 7왕자가 지리산에 운 상원을 짓고 수행하여 6년만인 103년 8월 보름에 성불했기 때문에 칠불암으로 고쳤다고 한다. 신라 옥보고는 이 절의 운상원에서 50년 동안 거문고를 공부하고 30곡을 지어 세 상에 전하였다고 한다. 칠불사는 1948년 여순반란군토벌 때 불에 타버려 다시 지었다. 신라 때 김해에서 온 담공선사가 지었다는 아자방의 2중 온돌이 복원되어 있다.